갤러리 ERD 서울은 2024년 3월 7일(목)부터 3월 31일(일)까지 진종환 작가의 세 번째 개인전 《어느 계절》을 개최한다.
2023년 갤러리 이알디 부산에서 열린 개인전 《Conducted with eyes closed》이후 1년만에 갤러리 이알디와 함께 하는 본 전시에서는 작가가 작년 11월부터 올해 2월까지 작업한 신작 회화를 선보인다.
계절에 따라 천천히 변화하는 풍경을 감각하여 추상회화로 옮겨온 진종환은 겨울과 봄 사이에 흐르는 계절의 변화와 움직임을 포착하여 화면에 담아냈다. 작품을 들여다보면 흘러가는 공기, 변화하는 온도와 습도, 움직이는 바람과 빛이 감각적으로 다가온다. 몇 번이고 덧칠한 색과 면, 그 사이사이 올려진 선과 점이 만들어내는 어디선가 한 번쯤 보았을 법한 풍경들. 각각의 작품은 겹겹이 쌓인 땅에서 돋아나는 새싹처럼, 겨우내 그가 마주하고 옮겨 스며든 색과 시간의 감각들이 중첩되어 있다.
시각, 후각, 청각, 촉각, 미각 등의 감각은 인간이 받아들이는 모든 정보를 처음 수용하는 감각 기관을 통해 이뤄지는데, 이를 통해 우리는 생각하는 대로 느끼기보다 느끼는 대로 생각하고, 감각을 통해 세상을 이해한다. 가속화된 시간은 우리에게 편리함을 제공하는 동시에 현실에서의 느리고 약한 자극에 무감각해지는, 일종의 ‘정서적 무감각’의 상태를 겪게 한다. 이는 외부와 공감하거나 감응하는 능력을 상실케 하며 자기중심적 사고를 키워내 우리의 순수한 내면세계를 가리기도 한다.
진종환의 작품은 ‘작품을 본다’라는 시각적 감각과 함께 다른 영역의 감각을 불러일으키는 공감각적 심상을 떠올리게 한다. <봄이 오는 시간>은 잠시 포근해진 겨울날 나뭇가지 위에 피어난 봉우리를 발견한 무렵의 작품으로, 화면 위의 선들은 새싹이 나오는듯한 생동감과 새로운 탄생을 준비하는 생명의 에너지가 느껴진다. 어디선가 불어오는 겨울의 바람과 구름의 움직임을 포착한 <구름이 바람따라>, 어둑해지는 하늘에 섞인 푸른 땅의 색을 담은 <노을빛 공기>, 나란히, 그러나 각자의 시간에 따라 피어나는 듯한 <잎과 잎 사이>, 추운 겨울 코끝이 시린 공기가 촉각적으로 느껴지는 <차가운 공기 위로>는 동일한 크기의 캔버스에 작업했지만, 각기 다른 화면으로 구성되어 각양각색의 흐름을 만들어낸다.
이 외에도 이번에 선보이는 신작들은 각 작품의 제목처럼 어둑하고 긴 겨울과 생동하는 봄 사이에서 작가가 감각한 것을 담은 작품이다. 기존 작업을 통해 직접적으로 드러냈던 계절의 관점에서 더 나아가 시각을 제외한 '감각'을 활용하여 필연적이고 불가항력적인 계절의 틈 사이에서 변화하는 자연을 어떻게 다시 시각적으로 표현할지에 대한 작가의 고민을 담고 있다.
'겨울의 시간은 공기가 천천히 움직인다.
느린 속도로 이동하는 구름 위로 태양은 계속해서 떠오른다.
이제, 마른 가지는 겨울의 시간을 지나
점점 가까워지는 태양을 바라보며 움직이기 시작한다.
새벽 해가 뜨기 전, 6시 무렵 나무 봉우리 속에 희미한 녹색이 일어나는…
나는 어쩌면 봄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아닌가?'
작가처럼 일상 속 풍경을 마주할 때 각기 다른 바람의 온도와 속도, 옅고 진한 숲속 내음, 구름의 이동 등 시각 외의 관점으로 관찰하고 이를 바라본다면 우리는 어떤 것을 감각할 수 있을까. 그전에 우리는 어떻게 우리의 감각을 되살릴 수 있을까.
익숙하지 않은 감각으로 지나치게 될 겨울을 통과하여 마주할 봄의 기운을 서서히 느껴보는 일. 나와서 자라고 쇠약해져 사멸하는 과정에서 생명력을 갖고 유기적으로 생성하는 자연의 순환을 떠올려보는 일. 그 자연의 순환 사이에 고요히 존재하는 어느 계절을 떠올려보는 것. 그의 작업에서 나타나는 짙은 추상 속에 숨겨진 자연에 대한 신비로운 감수성은 우리의 감각을 불러일으키는 매개의 역할을 하고 이는 우리를 감각적 사유로 이끈다.
진종환의 작업은 우리가 눈치채지 못한 다른 감각들을 되살리게 한다. 고요히 존재하는 어느 계절을 담아낸 그의 작품을 천천히 음미하며 감각적 사유의 확장을 통해 감각을 실마리로 삼아서 보이는 것, 보이지 않는 것, 이해하는 것, 모르는 것, 그 전부를 축적해 나가는 내면의 여정으로 떠나보는 사색의 시간을 가져보기를 바란다.
글- 우혜진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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