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포장도로 옆,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자리한 작고 오래된 저수지. 사람들에게 눈길조차 받지 못하며 깨끗한 모습은 없고 그저 잔잔한 물결만이 일렁이는 기이한 간결함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곳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혼돈과 열악한 공간 속에서 치열하게 생명을 부지하고 있는 생물들의 모습이 보인다. 조금은 하찮고 볼품없어 보이는 늪지대에도 그들만의 생태계가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생태계 속에는 고인 물에 관심을 가지며 살아가는 저수지 인간들도 존재한다. 그들은 저수지 속 환경에 큰 불만을 가지고 있지만 쉽게 바꾸지 못하는 환경에 순응하며 살아가던 중 자신들이 만들어 낸 파동으로 인해 주위의 자갈, 풀들이 이곳을 넘어가는 장면을 목격하며 벗어날 수 있는 방법들을 모색한다. 이렇게 작업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저수지 속 인간들은 파동에 대해 관찰하고 실험한다. 그들은 저수지에서 발견할 수 있는 모든 도구들을 활용하여 파동을 만드는 행위에 집중하는데, 이것은 오롯이 열악한 환경에서의 해방과 주변의 다른 인간들과의 소통을 위한 장치이다. 목격한 파동들의 기록을 열거하는 자, 큰 파동을 일으키며 다른 저수지 인간을 집어삼키려는 자, 주어진 환경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인물들이 보인다. 바다나 강의 면적에 비해 한없이 작은 이미지의 저수지이지만 그들은 서로 살아남기 위해 발둥 쳐야 하는 입장에 놓인 것이다. 저수지에서의 해방과 넓게 펼쳐진 곳에서의 또 다른 파동을 위하여, 그들은 작게 소리치고 있다.
장종훈 작가는 본인의 작업이 캔버스 혹은 종이와 같은 재료에 갇혀 국한되어 보이는 것에 예민한 태도를 보였다. 그는 ‘파동’이라는 특성을 표현하기 위해 나무 판넬 위 핸디코트 마감재를 얹어 물결 모양을 내고, 파동을 담은 듯한 모습의 표현 위에 표현하고자 하는 이미지들을 그려나간다. 이번 전시는 그가 주로 사용하는 펜 드로잉 기법을 통하여 저수지에서 벌어지는 인물들의 모습과 그들을 둘러싼 여러 이야기들을 풀어낸다. 현실에는 없을 법한 몽상과도 같은 이야기 속에서 몰입하며 펼쳐지는 이미지들은 관람객들에게 새로운 경험과 흥미를 유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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