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재는 숨은 존재이다.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의 울림이다.
공허는 투명한 가득참이다.
정적은 공허하지만 강렬한 순간이다.
어둠 속에서 보여지는 것들은 때때로 밝은 빛 속에서는 사라진다.
“나는 무형을 감지하고 지각하는 것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그것의 가시성, 가촉성, 가청성에 대해 사유해 왔다. 이번 전시에서는 지각 가능한 영역들에 내포되어 있거나 그들 사이 혹은 아래에 은밀히 존재하는 부재, 공허, 정적과 같은 무형의 영역을 탐구하는 작품들을 보여주고자 한다. 이들은 비가시적 숨은 존재이자 보이는 것들의 울림이며 공허하지만 강렬한 순간이다.”
“나의 작업은 묵상에서 감지되는 불확실하고 분명히 규정되지 않은 시간성과 장소성의 감각을 가지며, 정신적 리미널 상태 (경계 상태) 를 통해 무형의 영역에 다다르게 된다. 이는 관람객에게 자아감과 방향 감각의 상실 및 혼란을 외부 세계와의 일시적인 단절과 함께 야기하고, 시간과 공간, 존재 사이에서 생겨나는 혼미함은 그들로 하여금 마치 이 세상 어디에도, 어느 시간 속에도 속하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을 경험하게 한다. 이것은 또 다른 차원의 세계를 향유할 수 있는 접점의 순간이며 그들을 그림 내부의 세계, 즉 우리가 알고 있는 현실에서의 보편적 시간의 개념과는 전혀 다른 시간의 흐름을 가지는 완전히 다른 세계로 이끌며 시공간의 무한성을 자아낸다. 그들은 현실의 시간으로부터 벗어나거나, 시간을 멈추고 그 순간 안에 머물 수 있으며, 그곳에는 현실과 환각의 모호한 경계가 존재한다. 이는 무형을 경험할 수 있는 가능성의 공간과 만나는 순간으로 관람객은 캔버스 위에 층층이 중첩된 물감의 물질성을 통해 무형의 가시성, 가촉성, 가청성을 느낄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내 회화는 볼 수 없는 것이 보여지고 만질 수 없는 것이 만져지며 정적이 들리는, 즉 무형의 감지와 지각의 내적 경험이 심리적이고 사적으로 이루어지는 곳으로 정의될 수 있다. 때문에 나의 작업은 어떻게 보여지는지 보다는 어떻게 느껴지는지에 더 초점을 두고 있다.”
“나는 나의 내면화된 관념과 심상을 결과보다 과정에 더 중점을 두고 의식의 흐름 기법을 통해 시각화하는 작업 방식을 발전시켜 왔다. 이는 계획과 의도보다는 직감과 직관에 더 무게를 두고 있는 나의 작업관에 기인하며, 작업의 출발지와 목적지에 대한 분명한 인지는 주로 그것이 종착지에 다다른 이후에서야 가능해진다. 스케치나 드로잉과 같은 계획과 구상의 단계들을 거치지 않고 캔버스 위에 직접 레이어를 쌓아가기 때문에 나와 그림 사이에는 다른 어떤 매개체의 개입도 존재하지 않으며 작업의 전 과정이 오로지 캔버스 안에서 시작되고 끝을 맺게 된다. 그래서 나의 회화는 최종 지점에 이르기 위한 원초적 본능이자 욕구이며, 캔버스 안에서 그림이 진행되는 동안 겪어온 무수한 실패와 성취, 경험의 합으로 정의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작품에서 과정을 추적하는 것은 그 결과만큼 중요하다. 나는 캔버스 위에 그려지는 최초의 붓질을 기점으로 다양한 색과 형태, 붓자국의 레이어들을 연상적으로 층층이 중첩시켜 가며 내면 세계로부터의 관념과 심상을 발전 시킨다. 모든 레이어는 각자의 시간성과 공간성을 가지고 있으며, 그 자체로 각각 나의 육체적, 감각적, 감정적, 심리적 경험이 은유적으로 체화되어 만들어 낸 추상적 심상의 장면을 의미한다. 이러한 점에서 나에게 그림을 그리는 행위는 나의 내적외적 경험에서 비롯된 다양한 속도와 박자, 시간과 움직임, 몸짓과 붓질, 온도와 감정의 장면들이 그림이 진행됨에 따라 캔버스 안에서 축적되어 가는 유기적 과정이다.”
“나의 회화는 캔버스에 층층이 쌓인 레이어들을 밖에서부터 안으로 읽어 들어 가며 그들 사이의 공기를 느끼려는 시도를 통해 이해될 수 있다. 레이어들은 작품의 여정이 마무리 될 때까지 발생, 이동 소멸의 순환 과정을 숱하게 반복하게 되며 이 과정에서 선행하는 레이어들은 종종 흔적이 거의 또는 전혀 없이 다른 레이어로 덮이기도 한다. 그렇지만 그림의 표층은 심층부의 여전한 존재를 내포하며 그들의 울림을 암시한다. 또한 심층부 레이어들은 그림의 풍부한 기운과 분위기, 깊이감에 기여함으로써 나의 회화에서 결정적 역할을 하며, 이를 통해 자신들의 부재가 사실은 숨은 존재라는 것을 스스로 증명한다.”
“나의 작업은 주로 극명히 대비되는 규모의 캔버스에 아크릴과 유화로 그려지는 추상 회화로서, 대작은 간결한 힘을 추구하는 반면 소품은 좁은 공간 안에서 물감의 누적이 주는 강한 함축성이 특징이다. 규모에 따라 다른 자극으로 나타나는 무형의 울림에 대해 더 깊이 연구하고자
최근에는 다양한 규모의 회화 작업을 시도해오고 있다.”
2017, 황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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