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저명한 식물학자이자 <Mushrooms: A Natural and Cultural History>의 저자인 니콜라스 머니(Nicholas Money)는 그의 책에서 버섯과 관련된 흥미로운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비가 자주 내리는 습한 환경이 버섯의 생장률과 개체 수를 증가시킨다고 생각해왔는데, 저자의 주장은 오히려 버섯이 비를 더 내리게 함으로써 그들에게 적합한 환경으로 변화시킨다는 것이었다. 즉, 버섯이 많은 지역일수록 그 지역의 강수량은 증가하는 것이다. 이 메커니즘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버섯의 번식과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버섯은 균이 군집하여 생성된 균사체로써 생식세포인 포자를 공기 중으로 흩날려 번식을 한다. 포자는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매우 작고, 바람을 타고 최대 2000km 정도 이동한다고 기록될 정도로 매우 가벼우며, 수분을 끌어당기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포자의 이러한 물리적, 화학적 성질은 공기 중에 수증기 상태로 존재하는 수분을 응결시키는 핵(Condensation Nucleus)으로 작용케 한다. 즉, 버섯의 포자가 아직 빗방울이 되지 못한 기체 상태의 수분(구름)을 만났을 때, 주위의 흩어져있던 수분을 끌어당겨 뭉침으로써 결국 하나의 빗방울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버섯에서 분리된 포자가 긴 여행을 통해 결국 하늘에 다다라 수증기 상태의 물 분자를 빗방울로 변화시키는 과정은 한편으로 매우 종교적이다. 눈에 보이지 않고 잡히지 않는 무언가가 하늘까지 도달해서 실제의 결과물을 도출해내는 과정은 ‘기도와 응답’이라는 알고리즘을 떠올리게 한다. 흔히 기도를 통해 전달되는 우리의 염원은 눈으로 볼 수 없고 만질 수 없는 정신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과도한 비약이겠지만, 그것이 분명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실생활에서 감각적으로 느끼지 못하는 이유는 단지 그들이 너무 작고 가볍기 때문이 아닐까? 마치 현대물리학에서 물질의 최소 단위로 규명하는 원자처럼 혹은 버섯의 포자처럼 말이다. 이번 전시 <남단>에서 나는 종교와 과학, 정신과 물질의 이분법적 사고의 짙은 경계를 기우의례(비를 부르는 제사)라는 형식을 통해 희석시키고자 한다.
전시장의 중앙에 자리잡은 작품 <버섯기우>(2020)는 감실(龕室)을 모티브로 한다. 감실은 본래 조상이나 신을 안치시켜 모시는 작은 제단을 지칭하는데, 그 형태는 지붕을 갖춘 작은 집과 같다. 주로 사당에 설치되었으며, 그 앞에서 마을의 풍년을 기리거나 액(厄: 고통이나 병고)을 방지하기 위한 제사를 지내곤 했다. 이 작품은 이러한 감실의 형태를 가지고 있지만, 실제적으로는 안쪽에 안치된 버섯이 생장하는데 필요한 수분과 빛 등을 공급하는 일종의 온실이며, 버섯의 포자가 밖으로 이동할 수 있도록 공기순환기도 갖추었다. 나는 기도와 응답이라는 종교적 알고리즘을 버섯의 포자가 하늘로 이동하고 수분을 끌어당겨 물방울을 생성시키는 과정과 병치시킴으로써, 비물질적 현상에 대한 물리적 해석을 시도한다. 또한 비가 자주 내리는 습한 환경이 버섯을 자라게 하는 필수 요인임이 분명하지만, 동시에 버섯 스스로 그러한 환경을 주도한다는 니콜라스 머니의 연구결과를 인용해 신과 인간, 자연과 인간의 상호유기적 관계를 환기한다.
2017년 니콜라스 머니의 버섯에 대한 흥미로운 연구결과와 더불어, 2019년 이스라엘의 Tel Aviv 대학연구소의 라일락 하다니(Lilach Hadany) 박사는 벌과 꽃에 대한 재미있는 논문을 발표했다. 벌이 꽃에 가까이 다가가면, 꽃 꿀(풀이나 나무의 꽃이 번식을 목적으로 곤충이나 동물들을 유인하기 위해 내보내는 단맛의 액체)의 당도가 순간적으로 최대 30 퍼센트까지 증가한다는 논문이었다. 꽃가루를 벌에게 묻혀 번식하는 방법 이외에 다른 방도가 없는 이 식물은 벌이 가까이 다가오길 한없이 기다린다. 비록 귀와 같은 청각기관은 없지만 벌이 주변에 다가오면 날갯짓의 진동을 몸으로 느끼고 온 힘을 집중해 꽃 꿀의 당도를 순간적으로 증가시킨다. 웅웅거리는 벌의 소리는 초당 230번 움직이는 날개의 진동에서 비롯되며 이를 헤르츠(주파수 단위)로 환산하면 230헤르츠(Hz)이다. 피아노 건반에서 보면 라(220Hz)와 라 #(233.0819Hz)의 중간에 위치하는 이 소리는 나의 작업세계에서 ‘기다림’이라는 매우 고요하면서도 심히 역동적인 상태를 담아낸다. 이번 전시에서는 뮤지션, 사운드 디자이너 등등의 다양한 포지션으로 활동하고 있는 윤재민 작가와의 협업을 통해 기다림이 포함하고 있는 다양한 감정의 층위를 사운드 설치 작품인 <230>(2020)으로 선보인다. 그것은 기대감으로 충만한 행복한 기다림일 수도 있고, 반대로 아무 기약 없이 무작정 기다려야 하는 고통스런 기다림일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기도’로써의 기다림에 주목한다. 이러한 기다림은 수단과 목적이 완전히 분리되지 않고 오히려 얼기설기 엉켜 붙어 있다. 응답이 없음에도 계속해서 기도하는 것과 같다. 즉, 기다림 자체가 목적에 가까워지는 것이다.
또 다른 작품인 <지네발란>(2020)은 임의의 공간에 종교적 수술적 의미를 부여했던 과거의 작품인 <용소>(2019)의 연장선상에 위치한다. 본래 용소란 물(비)의 신인 용이 머무는 장소로 알려져 있으며 주로 기우의례가 이루어지는 신성한 공간이다. 이 공간이 용소로써 존재하기 위해서는 용이 편안하게 머물 수 있는 곳이어야 할 것이다. 깨끗한 물은 기본이고, 용이 승천하는 듯한 폭포가 있으면 안성맞춤이다. 하지만 실제로 조선시대에 행해졌던 기우의례를 살펴보면 용에게 정중하게 비를 강구했다기 보다는 용이 머무는 용소를 일부러 오염시키거나 용을 화나게 함으로써 비를 유도했음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조선시대에 거해졌던 기우의례 중 하나인 ‘침호두(沈虎頭)’는 용소라 여겨지는 신성한 장소에 호랑이의 피를 뿌려 용호상박의 적대적인 분위기를 조성함으로써 당황한 용이 승천하여 비를 내리도록 자극하는 의례였다. 여기서 호랑이는 용신을 위로하는 희생제물이라기보다 용신을 자극하는 대항적 요소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용은 호랑이 외에도 철, 단향나무, 지네 그리고 오색실을 경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나는 이렇게 용이 기피하는 대상을 이용해서 기우의례가 이루어지는 공간을 장식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용을 자극시키는 작품 <지네발란>(2020)을 선보인다. ‘ 지네발란’은 바위나 나무 줄기에 붙어사는 식물로써 그 모양이 지네와 닮았다 하여 지네발란이라 불린다. 나는 마치 아라베스크(식물의 잎을 도안화해서 기하학 무늬와 결합시킨 문양)양식처럼 지네발란을 도안화 시켜 문양을 제작하고 그것을 이용해서 전시장의 유리 천장 부분을 장식하는 돔 모양의 구조물을 제작한다. 즉, 용이 기피하는 지네와 외형적으로 비슷한 식물을 이용해 용을 기만하고 자극함으로써 비를 부르는 것이며, 이를 통해 기존의 단지 제의적 행위에만 초점이 맞춰진 기우의례를 공간적, 건축적인 영역으로 더욱 확장시킨다.
이외에 작품 <촛불발전기>(2014~)가 앞서 언급한 작품 <버섯기우>와 <230>과 연동되어 함께 설치된다. 이 작품은 촛불이 상징하는 기도 혹은 염원과 같은 정신적 에너지를 어떻게 하면 실제의 물리적 에너지로 변화시킬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하였다. 실제로 이 작품은 촛불의 작은 열을 전기에너지로 바꿔주는 일종의 발전기이며, 전시기간 동안 전기가 필요한 작품인 <버섯기우>와 <230>의 실질적인 에너지원으로 이용된다. 통상적으로는 미디어작품을 작동시키기 위해 플러그를 꼽아 일반전기를 사용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나는 이러한 전기에너지 조차 기도와 염원이라는 정신적 에너지와 병치시킴으로써 작품이 지닌 의미를 극대화시킨다.
이번 전시 제목인 남단은 조선시대에 실제로 기우제가 이루어졌던 5개의 기우제단인 오방토룡단(五方土龍壇) 중 남쪽을 담당했던 남방토룡단(南方土龍壇)의 줄임말에서 비롯되었다. 현재는 그 위치를 알 수 없는 남단은 오직 조선초기에 편찬되었던 고서를 통해 서울 남산의 남쪽 기슭, 한강의 북쪽에 위치했다고 확인된다. 기우의례와 관련된 작품을 선보이는 이번 전시의 공간이 공교롭게도 고서에서 언급한 장소와 멀지 않다는 사실은, 전시 제목을 통해 단순한 우연을 필연으로 구제하려는 작가로써의 욕심을 부추긴다.
백정기 ENG
K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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